정부가 9월 1일 발표한 2027년 국세수입 예산안은 584조4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법인세는 216조7000억 원으로, 2026년 추경예산보다 115조4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재정경제부는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한 이익 증가를 주요 배경으로 설명했다.[1] 기업의 호황이 국가의 지출 여력을 넓혀 주는 국면이다. 다만 이 금액은 앞으로 걷을 것으로 예상하는 세금이다. 이미 확보한 현금은 아니다.
반도체 기업이 좋은 실적을 내면 정부에도 여유가 생긴다. 문제는 그 여유로 새 사업을 시작한 다음이다. 공장을 짓거나 장학금을 받기 시작한 사람에게 세금이 덜 걷히니 내년부터 멈추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부도 호황의 돈을 전부 당장 쓰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미래대응기금을 만들어 투자하면서 세수 부족에도 대비한다는 방안을 내놨다.[2] 그렇다면 질문은 더 구체적일 수 있다. 얼마를 남겨 두는가. 그 돈은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가. 호황 때 시작한 사업을 이어 가는 비용까지 계산했는가.
◇한 번 사는 시설에도 다음 해 청구서가 붙는다
같은 미래 투자라도 돈이 필요한 기간은 다르다. 정부안의 기금 사업에는 반도체 산단 용수 시설과 AI 개발뿐 아니라 지방 국립대 장학금, 교사·아동 비율 개선 같은 사업도 들어 있다.[3]
장학금은 해당 연도 지급으로 끝나는 지출로 편성할 수 있다. 그러나 지원을 이어 가면 다음 학년과 새 입학생 몫이 다시 든다. 교사·아동 비율을 개선해 돌봄의 질을 높이는 사업도 사람을 채용한 뒤에는 인건비가 계속 나간다. 이런 사업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매년 드는 돈을 어떤 안정적인 수입으로 감당할지가 설명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시설 투자도 구입한 해만 계산하면 부담이 빠진다. AI 장비에는 전기와 유지보수, 소프트웨어와 운영 인력이 필요하다. 용수 시설에는 관리 인력과 정비 비용이 붙는다. ‘일회성 투자’라는 이름으로 초기 비용만 적어 놓으면 몇 년 뒤 다른 예산에서 운영비가 새로 필요한 것처럼 나타날 수 있다.
대안은 어렵지 않다. 사업마다 최초 투자비, 운영비, 이미 약속한 지원 기간, 종료하거나 규모를 바꿀 때의 비용을 한 장에 보여 줄 수 있다. 매년 1조 원씩 5년을 지원하기로 했다면, 새 사업을 결정할 때 첫해의 1조 원뿐 아니라 남은 4년의 약속도 함께 놓고 보는 것이다. 이는 현재 정부의 특정 사업비를 계산한 수치가 아니라 재정 부담을 비교하는 예다.
◇더 걷힌 세금, 기준은 하나가 아니다
지난해보다 세금이 많이 걷힌 것과 예산에서 예상한 것보다 많이 걷힌 것은 다르다. 정부의 미래대응기금 구상은 여기에 장기 추세라는 기준을 하나 더 둔다. 아래 내용은 정부가 제시한 예산안과 제도 개편안이다. 국회 의결을 거쳐 확정된 제도는 아니다.
8월 21일 추진방안에서 ‘추가세수’는 다음 해 내국세 세입예산이 최근 10년 증가율로 계산한 추세치를 웃도는 부분이다. ‘초과세수’는 당해 연도 세입을 다시 추계했을 때 기존 세입예산보다 늘어나는 부분으로 설명한다.[2] 후자도 재추계 단계에서는 전망이어서, 연말 결산으로 확인된 세금과는 다르다.
이 구분은 말장난이 아니다. 추세를 웃도는 돈을 따로 관리하려면 먼저 어느 정도가 보통의 세수인지 정해야 한다. 기준선을 낮게 잡으면 더 많은 돈이 추가세수로 분류되고, 높게 잡으면 적어진다. AI 확산이 한국 기업의 이익 기반을 오래 넓혀 주는지,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일시적으로 크게 오른 것인지에 따라서도 판단이 갈린다. 과거의 평균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이 둘을 자동으로 가려 주지는 않는다.
반도체 호황이 세수로 이어지는 길은 법인세만이 아니다. 정부는 소득세 증가 전망의 배경에도 반도체 기업의 특별성과급 확대를 넣었다.[1] 성과급이 줄면 그에 따른 소득세도 줄 수 있다. 기업 이익과 근로자 보상이라는 두 경로가 함께 움직인다.
그렇다고 법인세 증가분 전체를 ‘반도체에서 걷는 세금’으로 읽을 수는 없다. 여러 업종의 실적과 세법, 공제 등이 함께 작용한다. 어느 해 국세가 늘었다는 숫자만으로는 특정 산업의 기여를 정확히 떼어 낼 수 없다.
◇162조 원을 모두 쓰는 것도, 모두 쌓는 것도 아니다
정부의 2027년 예산안 홍보자료는 미래대응기금 수입안을 162조3000억 원으로 제시한다. 사용 계획은 세 갈래다.[3] 사업비 전체가 전년보다 새로 늘어나는 지출은 아니다. 기존 사업과 신규 사업이 함께 들어 있다.
| 구분 | 정부안의 금액 | 읽을 때 구분할 점 |
|---|---|---|
|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사업비 | 45.4조 원 | 해당 연도 사업에 투입할 돈 |
| 국채 신규 발행 축소 | 12.5조 원 | 새로 빌릴 돈을 줄이는 용도 |
| 여유자금 | 104.4조 원 | 운용하면서 향후 필요에 대비할 재원 |
여유자금에는 총괄계정 96조9000억 원뿐 아니라 지방계정 5조 원, 교육·인재계정 2조5000억 원도 포함된다.[3] 용도 구분 없이 쓸 수 있는 현금통 하나로 볼 수는 없다. 국채 발행을 줄이는 돈도 기존 빚을 그만큼 곧바로 갚는 돈과는 다르다.
따라서 “정부가 반도체 호황의 돈을 모두 써버린다”는 비판은 발표된 계획과 맞지 않는다. 정부안은 상당 부분을 남겨 두도록 짜여 있다. 남겨 둔 돈이 세수 감소를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세금이 줄어들 때쯤 지출 약속은 이미 커져 있다
기업의 이익이 생기는 시점과 법인세가 들어오는 시점은 일치하지 않는다. 국세청은 2025년 12월 결산법인의 일반적인 2026년 법인세 신고·납부 기한을 3월 31일로 안내했다.[4] 연중 중간예납도 있어서 이익 변화가 정확히 1년 뒤에만 반영된다고 할 수는 없다.[5] 요점은 실적과 세수 사이에 시차가 있다는 것이다.
업황이 꺾이기 시작한 해에도 전년 실적에 따른 세금은 들어올 수 있다. 그 수입을 보고 새 사업을 더 늘리면, 기업의 이익 감소가 세수로 나타날 무렵에는 지출 약속이 먼저 커져 있을 수 있다. 특정 연도의 불황을 예측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산을 짤 때 확인할 시간차다.
정부의 중기계획은 국세수입이 2027년 584조4000억 원에서 2030년 644조8000억 원으로 늘어나는 경로를 제시한다. 같은 계획은 세수 결손 때 미래대응기금을 활용하겠다고 명시한다.[6] 대비 방향은 있다. 그러나 상승 경로의 전망표만으로는 반도체 이익이 예상보다 적거나 회복이 늦어졌을 때 얼마나 대응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호황이 언제 끝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예상보다 덜 걷히는 경우에도 유지할 사업과 미룰 사업을 미리 나눠 보면 된다. 정부가 세입 전망을 바꿀 때 그 구분과 기금 잔액을 함께 내놓으면, 국민은 좋은 전망에 기댄 부분과 미리 준비한 부분을 구별할 수 있다.
◇기금이 크다고 곧바로 꺼내 쓸 수 있을까
기금이 자산을 갖고 있다고 해서 당장 쓸 현금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장기 투자에 묶인 자산은 필요한 때에 팔기 어렵거나, 팔더라도 손실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정부의 8월 추진방안은 여유자금을 전담 운용체계로 관리해 수익을 얻는 구상을 담았다.[2] KDI의 이태석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9월 토론회에서 기금 규모 전체가 곧바로 쓸 수 있는 현금을 뜻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기에 대비한 최소 유동성과 객관적인 적립·인출 규칙을 강조했다.[7]
여기서 투자와 불황 대비라는 두 목적이 만난다. 장기 수익을 높이려는 운용은 성장 투자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수가 줄 때 바로 꺼내야 할 돈까지 같은 방식으로 묶어 두면 대응이 어려워진다. 두 목적에 맞춰 자산의 만기와 위험을 달리 관리할 이유다.
반도체에서 생긴 세수로 만든 여유자금이 다시 같은 업황에 민감한 자산에 과도하게 투자되면, 세수가 줄 때 자산 가치도 함께 떨어질 수 있다. 실제 기금이 그렇게 투자했다는 주장은 아니다. 재원을 만든 산업과 적립금을 굴리는 자산 사이에 위험이 겹치는지 점검하자는 제안이다. 국내 첨단산업을 지원하는 사업과 재정안정화 자금의 운용을 나누면 산업 육성과 위험 분산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104조4000억 원을 한 해 사업비로 나눠 ‘몇 년은 버틴다’고 계산하는 것도 성급하다. 세수 부족을 메우는 돈, 계정별 용도, 자산의 현금화 가능성, 이미 약속한 사업비가 모두 다르다. 쓸모 있는 것은 큰 잔액 하나가 아니라 세입이 줄어드는 정도와 기간에 따른 자금 흐름표다.
◇중앙이 돈을 쌓는 동안 지방은 버틸 수 있나
기금 구상에는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 조정도 들어 있다. 지방교부세는 기존 내국세 연동 비율을 유지하되 계산 기준에서 기금 전입금을 빼는 방안이다. 교육교부금은 경제성장률과 학령인구 변화를 반영하는 산식으로 바꾸고, 개편 재원을 기금의 교육·인재계정에 담는 방안을 제시했다.[2]
정부는 중기계획에서 교육교부금 총액이 전년보다 줄면 차액을 보전하겠다는 방향도 밝혔다.[6] 이것도 대책의 일부다. 다만 전국 합계의 보전과 개별 지방정부·교육청의 현금 흐름은 같지 않다. 배분 기준과 지급 시점에 따라 현장의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국가가 세수 변동을 흡수하려고 만든 기금이라면, 중앙이 돈을 남겨 두는 동안 지방의 필수 서비스가 먼저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NEXT는 불황 때 중앙과 지방 사이에 돈이 움직이는 조건도 투자 사업을 고르는 기준만큼 구체적으로 정해 두는 것이 맞다고 본다.
◇호황의 돈으로 오래 지킬 약속을 고르는 일
늘어난 세금을 모두 남겨 두는 데도 비용은 있다. 지금 풀어야 할 기반시설 문제와 인재 투자를 미루면 기업과 지역이 성장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그렇다고 성장을 위해 쓴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업이 미래의 세금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편익이 나타나기까지 오래 걸릴 수 있고,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NEXT는 지출을 얼마나 늘리느냐와 함께 세 가지를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부담할 비용, 세입이 줄어도 지킬 지원의 범위, 그 범위를 넘어설 때 조정할 순서다. 이미 참여한 학생이나 입주한 기업과의 약속을 먼저 지키고 신규 확대를 늦추는 방법이 있다. 사업을 끝내되 일정한 전환 기간을 두는 방법도 있다. 분야마다 가능한 선택은 다르다.
미래대응기금은 호황과 지출을 떼어 관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성패는 적립 규모를 발표한 날이 아니라 세금이 덜 들어오는 해에 드러날 것이다. 그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늦출지 지금 설명할 수 있을 때, 호황의 성과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도 오래 간다.
출처
[1] 재정경제부, 2027년 국세수입 예산안, 2026.9.1. ↩
[2] 기획예산처, 미래를 대비하는 새로운 재정운용의 틀 제시, 2026.8.21, 별첨 「미래대응기금 추진방안」 5~9쪽. ↩
[3] 기획예산처, 2027년 예산안 자료, 2026.9.1, 첨부 「27년 예산안 홍보자료」 5~6쪽. ↩
[4] 국세청, 10만 개 법인에게 3조 원 자금유동성 세정지원, 2026년 법인세 신고 안내. ↩
[5] 국회예산정책처, 2026 대한민국 조세, 238쪽. ↩
[6] 기획예산처,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 2026.9.1, 첨부 4번, 7·15·17쪽. ↩
[7] KDI, 2027년 예산안 및 미래대응기금 토론회 개최 결과, 2026.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