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4300streetcar · Taipei Skyline from Old Place Airplane Observation Deck April 2026 5.jpg · CC BY 4.0
2023년 8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 한국·미국·일본 정상이 채택한 ‘협의에 대한 공약’은 한 쪽짜리 문서다. 세 나라는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주는 지역의 도전과 위협에 신속하게 협의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대응을 조율하기로 했다. 각국이 자국 안보와 주권을 지키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자유를 보유한다는 문장도 들어갔다. 마지막 문장은 성격이 다르다. 이 공약이 국제법이나 국내법상의 권리·의무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다.[1]
‘한미일 동맹’이라는 익숙한 표현과 이 문서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세 나라는 함께 협의하기로 했을 뿐, 한 나라의 전쟁에 나머지 두 나라가 자동으로 들어가는 조약을 맺지는 않았다. 한국과 미국, 일본과 미국 사이의 양자 조약은 그대로다. 실제 위기에서 세 나라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상황과 각국의 판단, 법적 절차가 정한다.
지금 남은 질문은 구체적이다. 한반도와 대만 주변에서 위기가 동시에 터지면 어느 위험부터 다루는가. 한 곳에 필요한 지원을 다른 곳도 요청하면 누가 우선순위를 정하는가. 위기가 커지기 전에 정보를 맞추고 상대의 결정을 확인하는 절차는 오판을 줄여 준다. 그러나 회의가 열린다고 이 질문의 답까지 정해지지는 않는다.
서로를 믿느냐는 감정의 문제로만 풀리는 일도 아니다. 세 나라는 지켜야 할 국민과 영토가 다르고, 쓸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NEXT는 그 차이를 평상시에 확인하는 대화가 동맹을 오래 유지하는 조건이라고 본다.
◇조약마다 가리키는 지도가 다르다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미일안보조약 제5조는 일본의 행정 아래 있는 영역에서 당사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했을 때, 각자의 헌법상 규정과 절차에 따라 공동의 위험에 대처한다고 규정한다.[2] 장소와 절차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말만으로 모든 지역의 모든 행동이 이미 약속됐다고 읽을 수 없는 이유다.
한국에도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국내 의사결정 절차가 있다. 한미일 협력 문서가 이를 대체하지 않는다는 점은 캠프 데이비드 공약에 적혀 있다.[1] 안보 협력은 세 층으로 나눠 봐야 정확하다. 기존 조약에 따른 약속, 새로 만든 협의 절차, 사안별로 결정할 행동이다.
행동의 종류에 따라 판단도 달라진다. 정치적 지지 성명을 내는 일, 경제 제재에 동참하는 일, 자국군을 해외에 보내는 일은 각각 다른 결정이다. 한국 헌법 제60조 제2항은 국군의 외국 파견과 외국군대의 한국 영역 내 주류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을 규정한다.[3] 다만 동맹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이 조문 하나로 판단할 수는 없다. 어떤 주체가 어떤 활동을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검토할 조약과 법률이 달라진다.
이 구분이 미리 되어 있지 않으면 위기 때 ‘이미 약속한 일’과 ‘새로 결정할 일’이 뒤섞인다. NEXT는 정부가 협력을 설명할 때 약속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보다 약속의 범위와 남은 결정이 무엇인지 밝히는 편이 국민의 판단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한반도 방어의 후방은 일본에 있다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오느냐와 별개로, 일본은 이미 한반도 유사시 지원을 설명하는 제도 안에 들어 있다. 일본 외교청서가 소개하는 유엔군사령부 후방사령부와 주일 시설의 역할이 그 사례다.
미일안보조약 제6조는 일본의 안보와 극동의 평화·안보 유지를 위해 미군의 일본 내 시설 사용을 규정한다.[2] 이와 별도로 일본의 2024년 외교청서는 주일 유엔군 지위협정에 따라 유엔군의 군수 지원에 필요한 최소 범위에서 주일미군 시설·구역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당시 지정 시설은 일곱 곳이었다.[4] 이것이 일본 자위대의 한국 내 활동 허가와 같지는 않다. 한국에 대한 지원이 한국 영토 안의 준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영향은 양쪽으로 간다. 일본의 안보가 나빠지면 한국에 대한 지원 여건도 흔들릴 수 있다. 일본이 자국 방어와 다른 지역 지원을 함께 따지는 상황이라면, 한국에는 필요한 지원이 어느 조건에서 유지되는지가 관건이 된다. 거꾸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커지면 일본의 안전과 시설 운영에도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전쟁을 멀리서 구경하는 구조가 아니다.
그래서 한일 간 신뢰라는 말은 구체적인 내용으로 채워질 때 의미가 있다. 서로 어떤 정보를 주고받는지, 자국민 보호와 지원 요청을 어느 창구로 조율하는지, 정치적 갈등이 생겨도 필수 연락을 어떻게 이어 가는지다. 역사 문제를 잊으라는 요구만으로는 협력이 오래가기 어렵다. NEXT는 역사적 책임에 관한 논의를 이어 가면서 위기 때 국민을 보호할 절차를 따로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동맹 현대화’라는 같은 말, 세 나라의 다른 답안
2026년 7월 7일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 대한 한국 외교부 발표에는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에 대한 공조와 비핵화 원칙, 외교적 관여, 경제안보 협력이 함께 담겼다.[5] 9월 21일 뉴욕 회의에 대한 일본 외무성 발표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무력이나 강압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문제까지 공동 의제로 설명한다.[6] 대만은 이 글이 상상으로 끌어온 의제가 아니다. 다만 이 발표만으로는 세 나라가 대만 유사시 어떤 군사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는지 알 수 없다.
간극은 한미 사이에도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발간한 고명현의 2026년 6월 보고서는 한미 양국이 동맹 현대화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한국은 한반도 방어를, 미국은 더 넓은 인도·태평양의 요구를 강조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안에서도 백악관과 의회·군이 기대하는 결과에 차이가 있다고 봤다.[7] 미국의 요구를 하나의 목소리로만 듣지 말라는 지적이다.
세 나라의 출발점은 이렇게 갈린다. 한국에 대북 억제는 국민이 사는 공간을 지키는 문제다. 미국은 한국 방어와 함께 여러 지역의 위험을 저울질한다. 일본은 북한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주변 해양·도서와 자국 영역의 방어를 따진다. 위험이 겹칠수록 제한된 자원을 어디에 먼저 쓸지를 두고 차이가 커질 수 있다.
평상시에는 이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협력을 넓히고 훈련을 이어 간다는 목표에만 동의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러 위기가 겹치면 사정이 달라진다. 지원의 규모와 시기를 고르는 문제가 된다. NEXT는 한국이 동맹의 지역적 역할 확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반도에서 계속 유지될 기능도 함께 협의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공개 자료로는 답이 확인되지 않는 질문이 남는다. 역할이 달라질 때 방어에 필요한 능력은 어떻게 보완하는가. 보완이 끝나기 전의 위험은 누가 평가하는가. 합의한 준비가 늦어지면 일정을 조정할 절차가 있는가. 병력 숫자 하나로 답할 수 없는 이 질문들이 동맹 협의의 과제로 남아 있다.
◇미국을 붙잡으려다 무엇을 약속하게 될까
한국이 두려워하는 위험은 두 방향에서 온다. 필요한 순간에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할 수 있고, 원하지 않은 충돌에 참여하라는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동맹을 강화하면 첫 번째 위험은 줄지만, 협력 범위가 넓어질수록 두 번째 문제가 구체적인 협의 대상이 된다.
지역의 모든 요청을 거절한다고 한국의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다른 동맹국의 위험이 한국의 무역과 지원 여건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한국의 기여가 작아지면 상대가 부담을 질 이유도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협력의 범위를 정하지 않으면 한국이 감당할 능력과 국내의 동의를 넘어서는 약속이 쌓일 수 있다.
NEXT는 선택지를 ‘참여’와 ‘불참’ 두 칸으로 나누지 않는 편이 낫다고 본다. 외교적 조정, 자국민 보호, 인도적 지원, 경제적 조치, 군사 활동은 목적과 위험이 저마다 다르다. 따질 것은 어느 조치가 위기를 억제하고 어느 조치가 보복이나 확전을 부를 수 있느냐다. 비군사적이라는 이름이 붙은 조치도 상대는 적대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중국의 반응만 따지고 미국·일본이 감수하는 위험을 지우는 합의도, 동맹의 필요만 강조하고 한국의 피해를 빼는 합의도 오래가지 못한다. 협의로 모든 차이를 없앨 수는 없다. 목표는 차이가 남은 채로도 서로 예상할 수 있는 행동을 정해 두는 것이다.
◇합동훈련 옆에 의사결정 연습을 둔다면
도상연습 자체는 새 방식이 아니다. 일본 외교청서도 미일 확장억제대화에서 도상연습을 다룬다고 소개한다.[4] NEXT가 제안하는 것은 한반도와 다른 지역의 위기가 겹치는 상황을 놓고, 외교·국방에 더해 경제와 재외국민 보호 담당까지 참여하는 정책 협의 연습이다. 기존 연습에 이런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는지는 공개 자료로 확정하지 못했다. 그 범위를 점검하는 일이 먼저다. 가령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주변 해역의 통행 장애가 동시에 커졌다고 가정할 수 있다. 실제 작전이나 특정 전쟁의 예측이 아니다. 외교·국방·경제 당국이 어떤 정보를 누구에게 요청하고, 어떤 결정에 정치적 승인과 예산이 필요한지 확인하는 연습이다.
순서는 이렇다. 한국 정부 안에서 부처별 판단을 먼저 맞추고, 공동 판단이 필요한 부분은 동맹국과 협의한다. 한국이 지킬 방어 기능, 해외 국민 보호, 기업 활동 중단에 대비한 책임도 이 과정에서 다룬다. 협의가 늦어지는 이유가 정보 부족인지, 권한의 충돌인지, 실제 이해의 차이인지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성과는 연습 횟수로 재지 않는다. 다음 회의에서 확인할 것은 발견한 충돌을 해결했는지, 책임 기관을 정했는지, 필요한 예산을 확보했는지다. 공개할 수 없는 군사 정보는 보호하되, 국민에게 추가 부담을 요구하는 정책은 정부가 목적과 결정 절차를 설명하는 것이 원칙이다. 비밀이 필요한 작전과 민주적 판단이 필요한 약속을 모두 ‘안보’라는 말로 묶어 감출 수는 없다.
반론도 있다. 협의를 세밀하게 할수록 이견이 더 많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양보 논란이 일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의 대만 관련 역할을 더 구체화하라고 요구할 수 있고, 중국은 연습 자체를 한국의 참여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고 차이를 남겨 두면 실제 위기에서 더 짧은 시간 안에 같은 문제를 결정하게 된다. 남는 판단은 평상시의 불편한 협의를 감당할 만한 비용으로 볼 것이냐다.
캠프 데이비드의 한 쪽짜리 문서에는 세 나라가 하기로 한 일과 아직 정하지 않은 일이 함께 적혀 있다. NEXT는 한국이 먼저 협의할 의제를 셋으로 본다. 위기가 겹칠 때 유지할 한반도 방어 기능,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 지원, 추가 공약의 국내 심사 절차다. 이미 합의된 부분은 이행을 점검하고, 남은 이견은 위기가 오기 전인 평상시에 다룬다. 동맹국을 설득할 한국의 기여도 이 조건과 함께 내놓을 때 협의 공약이 실제 힘을 갖는다.
출처
[1] Commitment to Consult, 2023.8.18.
[2] 미일안보조약 전문, 제5조.
[3] 국가법령정보센터: 대한민국헌법 제60조, 제60조 제2항.
[4] 일본 외교청서 2024, Japan-U.S. Security Arrangements, 제6절.
[5] 한국 외교부,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결과, 회의 2026.7.7, 발표 7.8.
[6] 일본 외무성, Japan-U.S.-ROK Foreign Ministers’ Meeting, 2026.9.21(뉴욕 현지).
[7] 고명현, 상호호혜적 동맹 현대화와 한미 간 균형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전략보고 383호, 20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