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부전선 GOP 철책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육군 15사단 초병들. 2012년 12월 4일 국군이 촬영해 공개한 자료사진이다.
중동부전선 GOP 철책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육군 15사단 초병들. 2012년 12월 4일 국군이 촬영해 공개한 자료사진이다.
사진: 대한민국 국군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촬영 박흥배) · 2012.12.4 육군 15사단 전방 GOP 철책경계 (8245223341).jpg · CC BY-SA 2.0

2024년 1월 15일 평양.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평양 남쪽 관문에 서 있던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꼴불견"이라고 했다. 일주일 뒤 위성사진에서 탑이 사라졌다.[1][2] 한 달 전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그는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했다.[3] 통일을 상징하던 탑이 그 선언에 따라 헐렸다.

그로부터 2년 8개월이 지난 9월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지뢰가 두 차례 터졌다. 수색로를 내던 25사단 수색대대 간부 세 명이 다쳤고, 대대장은 발목을 잃었다. 다음 주로 잡힌 유엔군사령부 현장조사에 앞서 조사단이 들어갈 길을 여는 작업이었다.[4] 조사 대상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지뢰를 묻었는지였다.[5] 그사이 '두 국가'는 연설에서 헌법으로, 헌법에서 휴전선 북쪽의 장벽과 지뢰지대로 옮겨 갔다.

터진 지뢰가 누구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도 아군 것인지 북한 것인지, 매설된 것인지 유실된 것인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고 했다.[6] 국립과학수사연구원 1차 감정 결과는 추석 연휴 뒤에 나온다.[7][8] 다만 이번 사고가 난 자리는 남북이 한 번도 함께 확인하지 않은 선 가까이였다. 그 선 주변에서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은 2025년 한 해 17번에서 올해 9월 초까지 한 달 사이 20여 번으로 늘었다.[9]

◇그날 수색대는 무엇을 확인하러 갔나

부대원은 18명이었다. 간부 15명, 병사 3명. 수색로 개척 작전 중 선두에 선 공병 중사가 첫 폭발에 다쳤고, 그를 구하러 다가가던 대대장(중령)이 두 번째 폭발에 중상을 입었다. 두 사람 모두 방호복과 지뢰덧신을 착용하고 있었다. 중상자 두 명은 비무장지대 안에서 헬기 인양기로 끌어올려져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4] 대대장은 발목을 잃었다.[10]

합참은 사고 당일,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근처에서 '지형 변화'를 식별해 유엔사에 현장조사를 요청해 두었다고 밝혔다.[5] 이 문제는 9월 10일 국회에서 먼저 제기됐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서부전선 한 사단의 경계 구역에서 북한군이 만든 지뢰지대 등이 군사분계선을 10~15m가량 넘어왔다고 주장했다. 합참은 일부 지형 변화를 식별했고 지뢰 매설 가능성은 유엔사와 협의 중이라고만 답했다.[11] 의원실은 이런 곳이 25사단 구역에서만 여섯 곳이라고 주장한다.[11]

사고 지점을 두고는 표현이 엇갈렸다. 유 의원은 북한군 지뢰지대 인근이라고 했고, 합참은 사고 당일 "그 구역하고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했다.[12] 합참은 이후 사고 지점이 매설 의심지역에서 수십m 떨어져 있고, 근처에 개울이 흐른다고 설명했다.[4] '인근'과 '떨어져 있다'는 같은 거리를 두고 한 말일 수 있다.

◇휴전선 북쪽에서 2년 반 동안 벌어진 일

북한군이 휴전선 북쪽에서 해 온 작업은 합참이 여러 차례 공개했다. 2024년 봄부터 철조망을 치고, 전술도로를 내고, 대전차 장벽을 세우고, 지뢰를 묻었다. 합참은 2024년 6월, 작업 도중 자기들이 묻은 지뢰가 터져 사상자가 여럿 났는데도 북한군이 공사를 멈추지 않았다고 밝혔다.[13] 올해 7월에는 북쪽 폭우로 지뢰가 떠내려온 정황이 있다며 접경 지역에 주의를 당부했다.[14]

작업이 이어지면서 군사분계선 침범도 늘었다. 2025년 한 해 동안 17번이었다. 올해는 8월 중순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15] 이후 한 달 사이에만 20번 넘게 넘어왔다. 대부분 동부전선이었고, 우리 군은 대부분 경고사격으로 돌려보냈다. 합참은 북한군의 활동 변화나 특이 활동에 따른 침범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아직 손대지 않은 구간을 작업하다 생긴 일이라는 판단이다.[9]

◇선이 어디인지부터 흐릿하다

합참이 침범을 작업 중 실수로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군사분계선은 현장에서 눈에 보이는 선이 아니다. 1953년 정전협정 뒤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표식물을 세웠지만, 70여 년이 지나며 상당수가 사라졌다.

국방부는 2025년 11월 이 문제를 들어 북한에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군사분계선 기준선을 함께 정하자는 것이었다. 2018년 장성급 군사회담 이후 7년 만의 군사회담 제안이었다.[16][17] 북한은 답하지 않았다.[18] 표식물 보수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1973년 유엔사가 표지판을 보수하던 중 북한군이 총격을 가한 뒤로 보수 작업은 멈춰 있다.[16]

우리 군의 대응 지침에도 이 모호함이 담겨 있다. 표지판이 남아 있으면 그것을 따른다. 표지판이 없는 곳에서 우리 군사지도와 유엔사 기준이 다르면 더 남쪽 선을 기준으로 대응한다.[19] 선을 잘못 알고 사격해 충돌이 번지는 일을 막으려는 지침이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를 "안보 자해"라고 비판했다.[20]

북한은 남쪽과의 사이에 장벽을 쌓고 있다. 그 장벽의 기준이 되는 선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남북이 함께 확인한 적이 없다. 이번 사고도 그 선 가까이에서 났다.

◇'특수관계' 30여 년, 북한이 먼저 걷어찼다

북한이 남쪽과의 경계를 국경처럼 요새화하는 것은 분단 이후 남북관계의 전제를 뒤집는 일이다. 남과 북은 서로의 정통성을 부정하면서도 상대를 외국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통일의 3원칙으로 내세웠다. 김일성은 1980년 두 체제를 그대로 둔 채 하나의 연방국가를 세우자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방안을 내놨다. 북한은 남북이 따로 유엔에 가입하면 분단이 굳어진다며 오랫동안 반대했다. 그러다 1991년 9월 동시 가입을 받아들였고, 석 달 뒤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기본합의서 서문은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정의한다.[21] 유엔에 따로 가입한 두 정부가 서로를 외국으로 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규정이 30년 넘게 남북관계의 바탕이 됐다. 2000년, 2007년, 2018년의 정상회담이 모두 이 틀 안에서 열렸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서명한 9·19 군사합의는 비무장지대 안의 감시초소 일부를 양쪽이 함께 철수하는 데까지 나아갔다.[22]

그 틀을 먼저 깬 쪽은 북한이다. 김정은은 2023년 12월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굳어졌다고 선언했다.[3] 이어 2024년 1월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도록 교육하는 내용을 헌법에 명기하라고 주문했다. 같은 회의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비롯한 대남 기구가 한꺼번에 폐지됐다.[1] 애국가 가사의 '삼천리'는 '이 세상'으로 바뀌었다.[23] 그해 10월 15일에는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 연결 도로와 철길을 폭파했다. 이틀 뒤 북한 매체는 대한민국을 적대국가로 규정한 헌법의 요구라고 설명했다.[24]

올해는 당과 국가의 공식 문서에 이 노선이 새겨졌다. 2월 9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한국을 "동족의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한다고 했다.[25]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고친 헌법이 5월에 공개됐다. 영토 조항에는 북한 영토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다고 적혔다.[26] 평화통일과 민족대단결이라는 말은 헌법에서 빠졌다.[27]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북한 헌법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국경을 맞댄 나라로 들어갔다. 반면 2024년 김정은이 주문했던 '적대국' 규정은 공개된 헌법 전문에 없다.[27] 남쪽과의 육상·해상 경계선을 어디로 긋는지도 적지 않았다.[26] 헌법은 남쪽을 별개의 국가로 규정했지만, 그 경계의 좌표는 비워 두었다.

◇북한은 왜 문을 닫았나

해석은 세 갈래다.

첫째는 전쟁 준비론이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과 지그프리드 헤커는 2024년 1월, 김정은이 전쟁을 결심했으며 한반도가 1950년 이후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했다.[28] 그 뒤 2년 8개월 동안 북한이 휴전선에서 한 일은 주로 벽을 쌓고 길을 끊는 것이었다. 남쪽으로 이어진 도로를 스스로 폭파한 일은 이 해석과 잘 맞지 않는다.

둘째는 체제 방어론이다. 독일의 북한 연구자 뤼디거 프랑크는 같은 달, 북한이 남쪽의 영향이 들어오는 통로를 닫고 김정은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려 한다고 분석했다.[29] 같은 민족이라는 전제가 남아 있으면 북한 주민에게 남쪽의 생활수준은 언젠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별개의 국가가 되면 남의 나라 사정이 된다. 프랑크는 위험도 짚었다. 통일이라는 의제를 스스로 내려놓으면, 1970년대 동독이 그랬듯 그 의제를 상대에게 넘겨주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적대적 공존론이다. 38노스의 레이철 민영 리는 올해 5월 개정 헌법을 분석하며, 헌법에 적대 표현이 빠진 것을 완화 신호로 읽는 것은 오판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의 행동을 보면 남쪽과 분리된 채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체제를 굳히려 한다는 것이다.[30] 반대로 같은 헌법을 남쪽과 충돌할 뜻이 없다는 안심 신호로 읽는 분석도 나왔다.[31]

NEXT는 둘째와 셋째 설명에 무게를 둔다. 북한이 실제로 한 일은 분리와 차단이었다. 배경 조건도 달라졌다. 북한은 핵무력을 "되돌릴 수 없는" 지위라고 내세운다.[32] 리는 러시아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북한이 경제 압박에 덜 민감해졌다는 관측도 전했다.[30] NEXT는 이 변화로 북한이 남쪽과 등을 질 때 치르는 비용이 줄었다고 본다. 과거 남북 경협과 남쪽의 중재에서 기대하던 자금과 외교적 출구 일부를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분리가 곧 긴장 완화는 아니다. 장벽 공사 자체가 군사분계선 바로 옆에서 병력과 장비와 지뢰를 움직이는 일이다. 지난 한 달의 20여 차례 월선이 그 결과다. 목표가 분리라 해도, 선이 확인되지 않은 곳에서 분리를 밀어붙이면 충돌 위험은 오히려 커진다.

◇'평화적 두 국가'는 누구의 공식 입장인가

북한의 선언에 대한 한국의 답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025년 9월 "'사실상의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 대북 정책의 핵심"이라고 했다.[33] 통일을 지향한다는 단서를 붙인 두 국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며칠 뒤 정부는 두 국가를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입장에 서 있지 않으며, 남북관계는 통일 때까지의 잠정적 특수관계라고 선을 그었다.[34] 1991년 기본합의서의 틀을 지키자는 쪽이다.

그런데도 올해 5월 18일 발간된 『2026 통일백서』는 남북이 사실상 두 국가로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해, 통일을 지향하면서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관계를 만들겠다고 적었다.[35] 정 장관은 국회에서 남과 북은 각각 주권국가지만 외국은 아니라는 것이 정부가 말하는 평화적 두 국가라고 설명했다.[36]

국민의힘은 두 국가론 자체를 "위헌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헌법의 영토 조항과 평화통일 조항을 근거로 든다.[37]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광복절에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을 약속하고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단계적으로 복원하겠다고 했다.[38] 그러면서도 올해 8월 5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는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거나 '2국가론'을 내세우는 움직임에 대해 "논쟁의 여지는 있는 일"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선의로 한 일이 반국가 행위처럼 공격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39] 해당 보도는 이를 통일부 정책에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했다.

정책은 이름 논쟁만큼 나아가지 못했다. 정부는 2025년 6월 11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멈췄고, 북한의 대남 소음 방송도 다음 날 멈췄다.[40][41] 그 뒤로는 진전이 더뎠다. 9·19 합의 복원은 올해 2월 정 장관이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포함한 선제적 복원을 검토·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42] 9월 현재까지 국무회의 의결로 복원됐다는 발표는 없다. 당시 후보자였던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9월 16일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가지 안보환경을 고려해 가면서 잘 검토해 나가겠다"고 답했다.[43] 9월 22일 유엔총회에서 대통령은 '평화공존'을 내걸고, 핵·미사일 고도화를 멈추게 한 뒤 축소를 거쳐 "핵 없는 한반도"로 가자는 단계적 구상을 내놨다.[44] 북한 대표단은 이 연설 때 자리를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45]

북한의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김여정 당시 노동당 부부장은 2025년 7월 담화에서 "한국과 마주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고 했다.[46] 정부가 말하는 '평화적 두 국가'는 통일 지향을 전제로 하지만, 북한의 '두 국가'는 동족 관계의 단절을 전제로 한다.

여론은 세대에 따라 갈린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024년 36.9%에서 2025년 41.1%로 올랐다. 그러나 20대에서는 통일이 필요 없다는 응답이 50.7%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47]

◇11년 전 목함지뢰 때와 무엇이 다른가

감정 결과 북한 지뢰로 확인되면 2015년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해 8월 4일 오전 경기 파주 지역 비무장지대에서 수색 중이던 부사관 두 명이 5분 간격으로 일어난 두 차례 폭발에 크게 다쳤다. 두 사람 모두 다리를 잃었다.[48] 첫 폭발 뒤 두 번째 폭발이 이어져 피해가 커진 점이 이번과 닮았다. 합동조사단은 8월 10일,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목함지뢰를 묻었다고 결론 내렸다. 폭발 지점은 군사분계선 남쪽 440m였다.[49] 긴장이 높아진 끝에 8월 22~24일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이 열렸다. 북측은 공동보도문에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고,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다.[50]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협상 상대다. 2015년에는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판문점에 나와 앉았다.[50] 지금의 북한은 대남 기구를 없앴고, 한국과는 논의할 것이 전혀 없다고 당대회에서 못 박았다.[25] 확성기로 압박해 유감 표명을 받아 낸 2015년의 방식은 되풀이되기 어렵다.

우리 군 지뢰나 유실된 옛 지뢰로 확인되더라도 위험은 그대로다. 비무장지대에는 수십 년에 걸쳐 묻힌 지뢰가 있고, 북쪽의 새 지뢰는 큰비가 올 때마다 떠내려올 수 있다.

조사의 신뢰성도 과제로 떠올랐다. 현장조사가 추석 이후로 미뤄지자 야당은 조사가 늦어진다고 비판했고, 대통령실은 은폐는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답했다.[8][51][52] 합동조사에는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참여한다.[4] NEXT는 한국 정부가 혼자 내린 결론보다 제3자가 함께 확인한 결론이 국내 여론에도, 북한을 상대로 한 대응에도 더 설득력을 갖는다고 본다.

◇적대적인 이웃도 국경은 관리한다

NEXT는 감정 결과와 별개로 군사분계선을 분명히 하는 일이 남는다고 본다.

북한은 통일을 지웠고, 당분간 되살릴 뜻도 없어 보인다. 서울이 '통일 지향'이라는 말을 붙이든 떼든 평양의 계산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NEXT는 '두 국가'라는 이름을 둘러싼 논쟁보다 비무장지대의 안전 관리가 더 급하다고 본다.

북한 헌법이 스스로 대한민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고 적으면서 그 경계선을 어디로 긋는지는 비워 둔 것은 이 점에서 쓸모가 있다. 국경을 선언한 쪽에 경계 관리 협의를 제안할 논거가 되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지난해 제안한 군사분계선 기준선 협의는 통일 논의가 아니라 경계 관리에 관한 제안이다. 북한이 거부해 온 '민족 대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회담이 열리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우리 쪽이 보는 군사분계선을 정밀하게 측량해 기록하고, 유엔사와 함께 사라진 표식물을 되살리고, 그 좌표를 유엔사 채널로 북쪽에 알리는 것이다. 북한이 답하지 않더라도 좌표와 산정 근거가 기록으로 남으면, 다음 침범이나 지뢰 사고가 어느 쪽 지역에서 일어났는지를 따질 근거가 된다. 다만 좌표를 통보하는 것만으로 북한이 이를 인정하거나 분쟁이 줄어든다는 보장은 없다. 기록, 통보, 공동 확인은 효과가 각각 다르다. 위험도 따른다. 1973년 총격 이후 표지판 보수가 멈춘 것처럼, 현장 작업에는 장병의 안전이 걸린다. 한국군은 2004년 미국 국가지리정보국과 협력해 원본 지도상의 군사분계선을 실제 지형과 맞추는 작업을 추진했고, 그 좌표를 현재 지도에 적용하고 있다.[16] 측량과 좌표 기록은 이 작업을 넓히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반론은 양쪽에서 나올 수 있다. 한쪽은 두 국가 사이의 국경처럼 다루기 시작하면 헌법이 정한 영토와 통일 지향을 스스로 허문다고 본다. 표식물을 되살리는 일은 1953년 정전협정이 이미 정한 선을 확인하는 작업이며, 새 국경을 인정하는 일이 아니다. 다른 쪽은 합참의 '더 남쪽 선' 지침처럼 좌표를 통보하는 일이 선을 양보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본다. NEXT는 좌표와 산정 근거, 기준 간 차이를 기록해 두면 이후 경계 판단을 검증하고 일방적 후퇴가 있었는지 따지는 근거가 된다고 본다. 지금의 '더 남쪽 선' 지침도 기존 기록과 현장 표식, 기관별 기준이 서로 맞지 않는 구간에서 나왔다.

이 판단을 바꿔야 할 경우도 있다. 북한이 선을 확인하는 협의조차 적대국과의 협상이라며 끝내 거부하고, 월선과 지뢰 매설이 작업의 부산물이 아니라 압박의 수단으로 바뀐다면, NEXT는 경계 관리보다 억제 조치를 우선하는 쪽으로 판단을 바꾼다. 그 여부는 국과수 결과, 그리고 올가을 북한군이 공사를 이어 가는 방식에서 먼저 드러날 것이다.


출처

[1] 통일뉴스,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전문, 2024.1.16. ↩

[2] NK News, North Korea demolishes symbolic unification arch, 2024.1.23. ↩

[3] 서울신문, 김정은 "적대적 두 국가관계", 2023.12.31. ↩

[4] 문화일보, DMZ 지뢰 폭발 사고 경위 보도, 2026.9.23. ↩

[5] 헤럴드경제, 합참 유엔사에 현장조사 요청, 2026.9.21. ↩

[6] 문화일보, 강신철 신임 국방부 장관 부상 장병 위문, 2026.9.23. ↩

[7] Korea Times(연합뉴스), 2 explosions occurred in DMZ blast; forensic analysis on mine fragments under way, 2026.9.23. ↩

[8] 서울신문, DMZ 지뢰 현장조사 추석 이후로, 2026.9.25. ↩

[9] 세계일보, 한 달 새 20여 차례 MDL 침범, 2026.9.9. ↩

[10] 파이낸셜뉴스, 합참 "1명 발목 절단으로 수술", 2026.9.22. ↩

[11] 중앙일보(네이트 전재), 유용원 의원 대정부질문과 합참 답변, 2026.9.10. ↩

[12] 프레시안, 합참 "北 지뢰 매설 구역과 떨어진 곳", 2026.9.21. ↩

[13] MBC, 합참 "北, 지뢰 폭발 사상자에도 작업 강행", 2024.6.18. ↩

[14] 합참, 북측 폭우로 인한 유실 지뢰 주의 당부, 2026.7.23. ↩

[15] 서울신문, 북한군 MDL 침범에 올해 첫 경고사격, 2026.8.16. ↩

[16] 정책브리핑, 국방부 군사분계선 기준선 설정 군사회담 제안, 2025.11.17. ↩

[17] 뉴시스, 국방부 7년 만에 남북 군사회담 제안, 2025.11.17. ↩

[18] 머니투데이, 국방부 "北 특별한 반응 없어", 2025.11.24. ↩

[19] 아시아경제, 합참 MDL 대응 지침, 2025.12.22. ↩

[20] JTBC(네이트 전재), 국민의힘 "안보 자해 행위" 반발·북한 무응답 보도, 2025.12.22. ↩

[21]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남북기본합의서. ↩

[22] 국방부 보도자료, 남북간 DMZ 시범철수 GP 화기·장비·병력 철수 완료, 2018.11.11. ↩

[23] NK News, North Korea's national anthem drops unification reference, 2024.2.16. ↩

[24] 경향신문, 북한 "경의선·동해선 폭파는 헌법 요구", 2024.10.17. ↩

[25] Kyunghyang Shinmun, 9차 당대회 결론 보도, 2026.2.26. ↩

[26] 오마이뉴스, 북한 개정 헌법 전문 공개, 2026.5.6. ↩

[27] Korea Times, N. Korea's revised constitution defines territory, drops reunification references, 2026.5.6. ↩

[28] Robert L. Carlin·Siegfried S. Hecker, Is Kim Jong Un Preparing for War?, 38 North, 2024.1.11. ↩

[29] Rüdiger Frank, North Korea's New Unification Policy: Implications and Pitfalls, 38 North, 2024.1.11. ↩

[30] Rachel Minyoung Lee, Paving the Way for Hostile Coexistence, 38 North, 2026.5.21. ↩

[31] Khang Vu, The Diplomat, North Korea's Constitutional Amendments Signal a Policy of Assurance Toward South Korea, 2026.5. ↩

[32] 아시아경제(네이트 전재), 김여정 담화 "핵보유국 지위 되돌릴 수 없다", 2026.9.17. ↩

[33] 서울신문, 정동영 "사실상의 평화적 두 국가론", 2025.9.18. ↩

[34] 경향신문, 위성락 "두 국가 인정 입장 아냐", 2025.9.24(뉴욕 현지 9.23 발언). ↩

[35] 뉴데일리, 2026 통일백서 발간, 2026.5.18. ↩

[36] YTN, 통일백서 '평화적 두 국가' 국회 질의, 2026.5.20. ↩

[37] 중앙일보(다음 전재), 국민의힘 "위헌적 발상", 2025.10.14. ↩

[38] 정책브리핑,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사, 2025.8.15. ↩

[39] 뉴스핌, 이 대통령 통일부 업무보고 발언, 2026.8.6. ↩

[40] 경향신문,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2025.6.11. ↩

[41] 경향신문, 합참 "北 대남 소음방송 청취 안 돼", 2025.6.12. ↩

[42] 머니투데이, 9·19 합의 선제적 복원 추진, 2026.2.18. ↩

[43] 뉴스핌, 강신철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답변, 2026.9.16. ↩

[44] 정책브리핑, 제8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 2026.9.22(현지). ↩

[45] 서울신문, 유엔총회 연설 보도, 2026.9.23. ↩

[46] 김여정 담화 보도, 2025.7.28. ↩

[47] 서울신문,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25 통일의식조사, 2025.9.30. ↩

[48] VOA, 한국 군 "북한 목함지뢰 설치로 DMZ 폭발사고", 2015.8.11. ↩

[49] 서울신문, 2명 부상 DMZ 폭발사고 北 소행이었다, 2015.8.10. ↩

[50] 외교부 게시,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공동보도문, 2015.8.25. ↩

[51] 파이낸셜뉴스, 국민의힘 조사 지연 비판, 2026.9.26. ↩

[52] Seoul Economic Daily, Presidential office says UN Command joins mine blast probe, 2026.9.25. ↩